초평왕, 아들의 아내를 가로챈 아버지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피 튀기는 복수(15)

김영수 | 입력 : 2021/04/14 [08:01]

[김영수 문화산책 034] = 오자서의 가문은 대대로 초(楚)의 국왕을 보필한 명문가로,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吳奢)는 태자 건의 스승 겸 보좌역인 태부 벼슬을 맡고 있었다.

 




①당시 초의 상황은 왕실의 내분과 초평왕의 실정으로 어지러울 때였다. 초의 동남쪽에서는 미개인 취급을 받던(사실, 초도 원숭이라는 비아냥을 적대국에게서 받기는 했다) 오(吳)와 월(越)이 성장하며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②고대에서 가장 흔한 동맹의 방법은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켜 사돈이 되는 것이었다. 초의 태자 건과 진(秦)의 공주를 혼인시키자는 결혼동맹이 결국은 비극을 잉태했다.


③초로 시집을 온 진의 공주가 절세의 미인인 것을 알게 된 간신 비무기(費無忌)가 초평왕에게 며느리를 취하도록 부추겼다. 즉위 초의 젊었을 때는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초평왕이지만, 나이들어 노망기가 들었는지, 진 공주의 미모가 워낙 탁월해서였는지, 비무기의 부추김에 초평왕이 원래는 며느리감이었던 진의 공주를 맞아들이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④태자 건에게는 공주를 따라온 시녀를 공주라고 속여 혼인을 시켜버렸다. 나라가 막장이 되려니, 심각한 국제 외교문제인 것도 아랑곳없이 말도 안되는 협잡이 벌어진 셈이다.


⑤한 번 엇나가면, 막나가는 관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초평왕과 진의 공주사이에 왕자(웅진, 훗날 초소왕)가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⑥정작 태자 건은 공주인지 시녀인지 상관없이 잘 살고 있었지만, 모사를 꾸몄던 비무기는 제 스스로 태자 건이 즉위한 이후의 후환을 두려워했다.


⑦며느리가 될 여자를 취해버린, 공범이었던 초평왕도 아들이라고는 해도 영 껄끄러웠던 태자 건을 제거하는 데 동의했다. 여기에는 앞서 밝힌 초평왕과 진의 공주사이에서 소생이 태어난 것도 작용했으리라.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