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이십공신회맹축’ 국보 지정

최초 개국공신부터 숙종 보사공신까지 20공신 회맹

민족문화저널 | 입력 : 2021/02/22 [07:44]

문화재청은 실물과 관련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고 24m에 달하는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를 국보(국보 제335호)로 지정한다고 18일 밝혔다.

 

▲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이십공신회맹축~’은 왕실의 의식 ‘회맹제(會盟祭,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 1680년 8월30일 숙종6)’를 기념하기 위해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문서(1694, 숙종20)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功臣)’ 중 개국공신(開國功臣)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회맹제 거행 시기와 회맹축을 작성한 시기가 15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숙종 재위(1674~1720년) 중 일어난 정치적 변동 때문이다.


서인은 경신환국(1680)을 계기로 집권해 공신이 됐지만, 기사환국(1689, 숙종15)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신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서인은 갑술환국(1694, 숙종20)으로 다시 집권하면서 공신 지위를 회복했다.


이때 1등~3등 총 6명(김만기, 김석주, 이입신, 남두북, 정원로, 박빈)에게 ‘보사공신’ 칭호가 내려졌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회맹축은 숙종 연간 보사공신이 있기까지 공신으로 지위 부여(錄勳), 박탈(削勳), 회복(復勳)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자료다.


※보사공신=서인이 다시 집권한 경신환국(1680년4월) 때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훈호. 기사환국(1689)으로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이후 갑술환국(1694)으로 다시 회복(復勳)한다.


※※이십공신=조선 왕실이 공로를 인정한 공신. 당시 상황에 따라 공신의 명칭이 각각 달랐다. 정난공신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도운 세력을 공신으로 봉한 것이다.

개국공신(開國功臣 1392), 정사공신(定社功臣 1398), 좌명공신(佐命功臣 1401), 정난공신(靖難功臣 1453), 좌익공신(佐翼功臣 1455),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 익재공신(翊戴功臣 1468), 좌리공신(佐理功臣 1471), 정국공신(靖國功臣 1506), 광국공신(光國功臣 1590), 평난공신(平難功臣 1590), 호성공신(扈聖功臣 1604), 선무공신(宣武功臣 1604), 청난공신(淸難功臣 1604), 정사공신(靖社功臣 1623), 진무공신(振武功臣 1624), 소무공신(昭武功臣 1627), 영사공신(寧社功臣 1628), 영국공신(寧國功臣 1644), 보사공신(保社功臣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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